학창시절, 날 좋다고 따라다닌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자랑이라고 오해하진 마시라. 폭탄이었으니까. 발톱에 때도 안빼고 슬리퍼 신고 다니는 그런 애였다. 그렇다고 착하면 말도 안한다. 나름대로 꾸며서 다니는데 왜 있잖는가. 노는 애들 사이에 끼여서 놀아보려 하는 폭탄. 그런 애였다.

학원에서 알게 되었는데, 다닌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갑자기 나에게 x월 x일이 생일이 맞냐고 묻는거다. 어떻게 알았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예 맞아요."

하고 짧게 답했다.(나보다 한 살 어리다) 그리고 같이 놀던 친구와 계속 대화를 하며 외면했다.

그런데 집에 가서도 그 애의 물음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왜냐하면 생일이 몇일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에게 물었다.

"야 걔가 혹시 내 생일날 학원에서 선물이라도 주면 어떡하지?"
"좆되는거지 낄낄"
"아씨...."

고민 끝에 생일날 학원에 안가기로 했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생일 다음날, 학원에 갔다. 그런데 수업이 마친 후, 갑자기 그 애가 나에게 다가오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갑자기 선물을 준다.

"어제 왜 안왔어요? 생일선물 주려구 했는데.."
"아.. 생일이라서 집에서 보냈어요. 고마워요."

거리감을 두기 위해 끝까지 존댓말을 썼다. 하지만 친구들이 웃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친구들이 집에 가면서 묻는다.

"야 그거 뜯어봐라. 뭔지 보자."
"아 그냥 버릴란다."
"야 사람 성의가 있지 버리면 되냐? 보자?"

그리곤 선물을 뜯는다. 거기엔 필기구와 함께 편지가 한 장 있었다. 내용은 별거없고 그냥 공부 열심히 하란 말만 있었다. 친구들이 낄낄 웃어대니 부끄럽고 화도 나고 해서 선물과 편지를 그냥 버릴려고 했다. 그러자 평소 조용하던 한 친구가 하는 말.

"걔가 너 이러는 모습 보면 정말 상처받겠다."

그 말을 들으니 차마 버릴 수도 없었다. 사실은 나도 버리고 싶어 버리는게 아니라 친구들 앞이라서 그럴 뿐이었다. 걔가 무슨 잘못이 있나. 그래서 그냥 집으로 들고 왔다.

근데.. 원래 한번 미움박히면 빼기 어렵듯이, 집에 가져온 뒤 단 한 번도 그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외면했다. 편지도 어느 순간 없어졌다. 어머니가 버리셨는지..

아무튼 그 다음날 학원에 갔더니, 남자 애들이 나만 보면 미소를 짓는다. 여자애들도 마찬가지. 씨댕...

내 앞에서 한 친구가 다른 친구 녀석에게 이런다.

"야 여자가 좋아한다는데 이렇게 부럽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야"
"낄낄낄낄"

열받지만 화낼 수 있나. 학원 안에서.. 더욱이 여자애들도 있으니 뭐라 했다간 금방 걔 귀에 들어갈 지경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제발 그 애가 이제 말 걸지 않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볼 때마다 아는 척을 하고 말을 거는게 아닌가. 속으로 욕이 튀어나왔지만 그 때마다 단답으로 짧게 끊어서 대답을 해줬다. 근데 이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계속되니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친구들과 모의하여 그 애를 떨어뜨릴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친구의 주선으로 어떤 여자애에게 부탁을 했다. 학원으로 날 좀 찾아와서 아는 척 좀 하고 가달라고. 나중에 친구들이랑 맛있는거 사줄테니. 걔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안도감에, 친구들은 재미있어서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약속한 그 애가 찾아왔다. 그래서 일부러 다정하게 말하고 미소를 지으며 대해줬다. 물론 애들이 보는 앞에서. 내 친구들은 웃음을 참고.. 그리고 약속을 지켜준 그 여자애를 보냈다.

이제 걔가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난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으며 그 애의 반응을 살폈다. 근데 그 애가 울고 있었다. 그 애의 단짝인 여자애는 나와 내 친구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여전히 낄낄대고..

그 다음날 학원엔 갔더니 여자애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예전엔 인사하던 여자애도 날 모른척했다. 이미 연극을 도와준 그 여자애의 친구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듯 했다. 나만 잔인한 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 학원을 옮겼고, 그 뒤론 그 애를 한번도 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물론 그 애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던 건 아니다. 가끔씩 그 주변 패거리들이 날 욕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오늘 집에서 책상 정리를 하던 중 그 애가 줬던 필기구를 발견했다. 그 때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있다니....

한번도 쓰지 않은 새 물건이다. 써보니 잘나온다. 그 때의 그 오래된 디자인이다. 갑자기 센티멘탈해져서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때의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그 애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